또 영국 군주의 대관식에 사용되는 성 에드워드 왕관(St. Edward's Crown)도 무게가 약 2.23kg에 달한다고 하는데 영국 대관식에서 사용되는 왕관의 무게가 더 신뢰성이 있다고 한다.
영국 군주 대관식에서 사용되는 왕관은 순금으로 제작되었으며 444개의 보석과 준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어 그 무게가 상당하다. 1661년 찰스 2세의 대관식을 위해 제작되어 신성하게 여겼던 11세기 성(聖) 에드워드 왕의 왕관을 복원한 것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왕관의 무게가 2,3kg라고 한다면 일반적인 오토바이 헬멧이 약 1.5~1.8kg인데 이보다 훨씬 무겁다. 헬멧을 쓰고도 무겁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을 감안할 때 2.3kg의 질량감은 목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는 무게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4세’에서 유래된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는 말처럼 왕의 권력과 명예 이면에 있는 막중한 책임감과 고뇌가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왕관은 권력과 명예에 대한 상징성 외에도 책임감과 진정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왕관의 무게를 버텨야 하는 스트레스가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권력과 명예, 책임감과 진정성의 대립되는 관계는 이상적으로 선순환할 수도 있고, 현실적으로는 악순환에 빠지기 쉬운 양면성을 갖고 있다. 단순화시키면 권리와 의무의 상충적 관계성이 성립된다.
늘상 갈등의 핵심은 의무(책임감)는 다하지 않으면서 권리(권력과 명예)'만 누리려고 할 때 발생된다. 권력이라는 권리를 얻었지만, 그에 따르는 의무인 책임감을 회피할 때 권력은 부패한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역할과 의무를 다하지 않거나 역할에 충족하지 않았을 때 가족 간의 불신과 갈등은 초래된다. 이는 가정뿐만 아니라 기업의 CEO, 정치인, 고위 공직자, 기관장 외에도 소속된 구성원 역시 저마다의 위치에서 자기에 주어진 왕관을 버티지 못하면 결국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관의 속성인 책임과 진정성 보다 단순한 욕심으로 불나방처럼 권력과 명예를 탐하는 사람들이 발전과 번영 보다 갈등과 부조리를 양산한다.
일례로, 요리사라는 왕관을 쓰고 된장찌개를 만들지만 어떤 요리사는 정형화된 된장찌개를 만들고, 어떤 요리사는 깊은 맛으로 감동을 주는 된장찌개를 만들어 낸다.
요리사라는 권력의 직책은 동일해도 손님의 건강과 즐거움을 위해 최상의 맛을 내려는 진정성 있는 노력의 결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결국 왕이든 요리사든, 어떤 직책(권력)을 가졌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책임감과 진정성을 가지고 지극 정성을 다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의 가치와 그것을 받는 사람의 경험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공간정보를 단순히 기술적 영역으로만 볼 것인지 우리 사회와 국민 편익을 증진하는 선한 영향력으로 볼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이지만 적어도 공적으로 누군가를 대신해 맡는 중책이라면 왕관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꿈에 대한 목표와 이상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꿈에 대한 목표와 이상은 가장 화려한 보석 왕관이 아닌, 가장 고통스러운 가시 왕관에 있다.
보석 왕관이 권력과 영광을 상징한다면, 가시 왕관은 자신을 위한 모든 것을 버리는 희생과 섬김을 상징하는데 그 꿈의 무게는 2.3kg의 물리적 질량을 초월해 인류 역사상 약 26억 4천만 명(2025년 기준)에게 가장 깊은 울림을 주었다.
진정한 왕관의 권위는 지배가 아닌 헌신에서 나오며, 가장 위대한 명예는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강조하자면, 각자가 머리에 쓰고 있는 왕관의 진정한 가치는 얼마나 많은 보석이 박혀있느냐가 아니라, 그 안에 얼마나 인류에 대한 숭고한 가시왕관의 꿈을 담아내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또한, 그것이야말로 인류 공동체의 불신과 갈등을 넘어 발전과 번영을 이끄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커넥트 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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